소설가 최인호 씨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올린 암 투병기 여섯번째 이야기입니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 하면 산다.
from 서울대교구 '서울주보' 2012년 2월 5일 최인호 씀
최근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중의 하나는 ‘무리하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저를 아끼는 따뜻한 위로의 말임을 알고 있지만, 요즘엔 제 주치의인 성모병원의 강진형 교수가 ‘무리하지 마세요.’ 하고 말하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럼 누워서 환자 노릇만 하란 말이오. 의사 말대로 하면 다 죽어요. 의사의 말 반대로 하면 살아 난대두.”
저도 처음에는 가능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푹 쉬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누워서 잠만 자고, 책보고, 꼼짝 않고 텔레비전만 보노라니 점점 무기력해 지고, 우울해져서 그야말로 완전한 환자가 된 비참한 느 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파트 복도에서 끝까지 걸어보니 오십 보. 한 바퀴 돌아오면 정확히 백 보였습니다.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같았지만 저는 시간만 나면 복도를 걸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백바퀴를 돌아 만보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운전대도 잡았고, 가까운 거리는 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거리를 늘려 한남동에 있는 작업실에도 나갔습니다. 내키면 청계산에 가서 쉬엄쉬엄 약수터까지 걸어가고 멀리 여행도 떠나는 등 가능하면 제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일찍이 당나라의 선승 동산(洞山)에게 한 스님이 찾아 와 물었습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이 대답했습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그러자 동산이 소리쳤습니다. “이놈아, 추울 때는 그대를 더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더 덥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추우면 본능적으로 더운 곳으로 피하려 합니다.더운 곳으로 피하면 추위는 일시 가실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근심이 있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다른방법을 통해 고통을 피하려 합니다. 피하고 잊는 다고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추위를 피하려면 애써 더 추운 곳으로 찾아가라는 동산 스님의 말은 고통이 오면 더 그 고통을 직시하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도가서(道家書)인 「열자(列子)」에는 전설적인 신궁 비위(飛衛)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 기창(紀昌)이 찾아와 활쏘기를 배우려 하자 비위는 말합니다.
“활쏘기보다 먼저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끝까지 보는 공부부터 하게.”
이순신 장군도 말씀하셨습니다.
“살려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곧 살 것이다.(生卽必死 死卽必生)”
주님도 이렇게 못 박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0,39)”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루카 2,10)”라고 찬양하였듯이 우리가 겪는 이 들판에서 밤을 새우는 추위는, 이 병은, 이 슬픔과 고 통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듣기 위한 특별한 은총이니, 지금 여기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일어섭시다. 무리를 해서라도 길 수 있으면 기고, 걸을 수있으면 걷고, 달릴 수 있으면 뛰어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처럼 ‘구유 위에 누운 아기 예수를 보러 갑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기쁨에 젖어 하늘의 군대와 천사 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게 될것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 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성경 인용은 공동번역 성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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