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1일 토요일

소설가 최인호의 암투병기(4)

소설가 최인호 씨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올린 암 투병기 네번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극한 고통속에 있을때 기도를 하게되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이때, 기도와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현재의 고통의 이유를 해결해 달라고, 구하고, 협박하고, 흥정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글을 보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순종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안을 누릴수 있음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엿가락의 기도.                   
                                         from 서울대교구 '서울주보' 2012년 1월22일 최인호 씀

병세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문득 제 머릿속에 떠오른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마태 7,7:공동번역 성서)
이것은 무기력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길은 기도뿐이었으며, 제가 찾고 구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기도를 통한 주님뿐이었습니다.
저는 미친 듯이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열중하여도 좀처럼 제 가슴에는 평화가 깃들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한가운데 서시며 내려주신 ‘그리스도의 평화’가 제 마음에 여전히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제 기도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 기도는 ‘주님, 제 병을 고쳐주십시오.’, ‘주님, 기적을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제 병을 고쳐주시면 주님을 위한 글을 쓰겠습니다.’라는 식의 주님과 벌리는 흥정이었으며, 조건부 협상이자 벼랑 끝 전술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감히 주님께 던지는 막무가내식 생떼이자 명령이자 협박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순종하셨고, 주님께서도 피땀을 흘리시며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순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불경에는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이 고통이요, 구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즐거움이다.’라는 명구가 있습니다. 당나라의 선승 마조(馬祖)는 말하였습니다.
“진정으로 법을 구하는 사람은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夫求法者 無所求)
성 프란체스코 살레시오도 말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청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마라.”

그렇습니다. 제가 그처럼 열심히 기도했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였던 것은 잘못 구하고, 잘못 찾고, 잘 못 문을 두드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음을 구하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 아무것도 맛보려 하지 마라. / 모든 것을 얻기에 이르려면 /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마라. / 모든 것이 되기에 이르려면 / 모든 것이 되려고 하지 마라. / 모든 것을 알기에 이르려면 /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바로 그 무렵 정진석 추기경께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추기경께서는 단 한마디만 제게 전하였습니다.
“베드로 형제님, 하느님을 믿으세요.”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분명히 못 박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마태 6,8:공동번역 성서)
제가 그토록 기도했으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 하였던 것은 제가 구하기 전에 이미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고, 이를 구해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저의 기도는 엿가락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께 완전히 저를 맡기겠습니다. 다만 제가 쓰는 글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의 입속에 들어가 달콤한 일용할 양식이 게 하소서.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
요즘 저는 80%정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영화]'Wall street : money never sleeps'를 보고

* Wall street : money never sleeps

-드라마/미국 131분/개봉( 2010.10.21)
-감독 : 올리버 스톤
-출연 : 샤이아 라보프(제이콥 무어), 마이클 더글러스(고든 게코), 캐리 뮬리건(위니 게코), 찰리 쉰(버드폭스)

상세정보

'똑똑한 돈'(나선/이명로)이라는 책을 보다가, 언뜻 몇년전 월스트리트라는 영화가 있었다는 생각들어 찾아서 보게 되었다.

세계금융의 중심이라는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푼이라도 더 벌려는 금융가들의 암투와 음모를 그린 그속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월스트리트의 암투와 음모속에 희생된 스승에 대한 복수를 위해 제이콥이 버드폭스에게 가지만, 역시 배신을 당하고, 또 믿었던 사랑하는 위니의 아버지 고든에게도 속임을 당해 위니의 1억달러라는 큰 돈을 빼앗기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월스트리트의 돈을 목적으로 돈 게임하는 사람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까지 모는 모습, 참으로 돈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결국 돌아돌아, 위니의 1억 달러가 원래 사용하고자 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올바른 곳에 쓰여지면서, 그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모두 행복해 하는 모습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맞는것 같다. 돈은 우리가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뿐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란 것을...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큰 꿈을 꾸게하는 책, '나는 하나님의 가능성이고 싶다.'

*나는 하나님의 가능성이고 싶다..

       조현영 지음|두란노

춤이 좋아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춤만 추던 아이, 그냥 미국을 동경하여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갔던 아이, 유학하면서 영어와 공부에 좌절했던 아이, 이때 까지 그에게는 구체적인 꿈이 없었다. 단지 자식의 꿈을 대신 꾸며 기도하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러던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오르지 않는 공부를 포기하고 그가 좋아하던 음악으로 꿈을 바꾸려 했을때, 여러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라는 비전이 공부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의 최고 명문대중 하나인 스탠포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 입학/졸업을 했다. 그 이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무료영어강의, 여러모임의 강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청소년/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큰 꿈의 가능성을 심어주고 있다.

이 책을 보며, 조현영 그 보다는 그의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끊임없는 기도와 축복모습이 크게 다가왔다. 저자 자신도 공부에 어려움에 있을때 본인의 간절한 기도와 어머니의 중보기도가 가장 큰 힘이 되었고, 지금의 자신이 있게 했음을 반복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자식의 꿈을 위한 기도와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느끼게 하는 책이며, 동시에 현재 중년인 나에게도 하나님의 큰 꿈을 꾸게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질이 아닌 어떤 명분을 가지고 누구의 이름을 의지하며 앞으로 나가가는가가 중요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바라보아야 할것은 물질이 아닌 하나님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리더는 봉사와 헌신..'서번트 리더십'을 읽고,

*서번트리더십

제임스C.헌터 지음 | 김광수 옮김 | 시대의창

'서번트 리더십', 다른 말로 봉사와 헌신의 리더십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이책을 제목을 접하면서, 기존의 다른 자기 개발서의 일종으로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자기개발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래야만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나를 다그치는 것 같아서, 싫어한다.

보통 리더를 생각할 때, 회사의 사장, 큰 단체의 수장과 같은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책을 통해 삶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 모두가 바로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리더란 직원들 위에 군림하여 지시하는 사람이 아닌 직원들의 욕구를 규명하고 충족시키며 여러가지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고객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리더십의 모델은 예수를 모델로 하였으면, 현대에서 이와 같은 리더십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간디와 마틴루터깅 목사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리더십은 권력 아닌 권위에서 나오며, 권위는 희생과 봉사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봉사와 희생은 사랑을 통해 가능하며, 사랑은 의도와 행동을 통한 의지에서 나온다.(함축적으로 쓰니까 어려운데, 실제 책에는 쉽게 자세히 설명되어 있음.)

또한, 사랑에 포함된 8가지 의미에 대해 설명하며, 이와 관련된 리더십의 적용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 리더라고 상대방을 변화시킬수 없고,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는 "리더십의 바탕이 되는 봉사의 가장 중요한 보답 기쁨이며, 또한 타인을 사랑하는 행동은 우리 모두를 성장하게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봉사와 헌신의 리더가 되어야 하며, 될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1,000만 기독교인 있다는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이 아닌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현실을 보며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교회에 예수님의 리더십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음이 문제인 것을 짐작하여 알것 같다. 한국교회에 예수님의 리더십이 회복되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2012년 1월 15일 일요일

소설가 최인호의 암투병기(3)

소설가 최인호 씨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올린 암 투병기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암에 걸린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살면서 항상 따라다니는 걱정과 두려움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으로 절망하는 나약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얘기입니다. 당연히 저도 포함해서,,

* 아픔에로의 부르심             
                                                 from 서울대교구 '서울주보' 2012년 1월15일 최인호 씀

옛 중국의 선사 석상(石霜)은 어느 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백척이나 높은 작대기 끝에서 어떻게 하면 걸을 수가 있겠는가.”
제자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스스로 대답했습니다.“백척이나 높은 작대기에 올라가 능히 앉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진리에 이른 것은 아니다.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발자국 나가보라. 그렇게 되면 시방세계의 모든 진리를 보게 되리라.”

제가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육체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끊임없는 걱정과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루 24시간 매 순간이 마음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죽고 사는 백척 작대기 위에 앉아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걱정과 두려움에 떨고만 있어서는 되겠는가.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처럼 괴롭히는가. 죽음에 대한 공포도, 온갖 걱정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길한 망상 때문인데 어째서 일어나지도 않은 현상을 미리 가불해서 앞당겨 근심하고 있단 말인가.

저는 몇날 며칠을 제 불안에 대한 정체를 직시해 보려 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 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과거를 잊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조용히 쉬지 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불안과 두려움은 소화 데레사의 말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입니다. 과거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미래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사리분별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불교의 골수인 금강경에는 이런 명구가 나옵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선승 황벽(黃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주님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시지 않습니까.“…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마태 6,34)
제가 내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시겠습니까. 아들인 제가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겠습니까. 제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믿기보다 저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더 믿어 교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들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고 계신 아버지께서 제 날개를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습니까.
백척간두에서 유일하게 사는 방법은 한 발자국 더 나가는 일이며, 성난 파도를 잠재우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하는 유일한 방법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의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길입니다.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 벼랑 끝으로 오라. / 그들이 대답했다. / 우린 두렵습니다. / 그가 다시 말했다. / 벼랑 끝으로 오라. / 그들이 왔다. /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과거를 걱정하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성경 인용은 공동번역 성서입니다.)